[Vol.12] “법 지식은 꿈 키우는 밑거름”…판사·변호사 돼 볼까

[진로체험 프로그램 돋보기] 서울북부청소년꿈키움센터 ‘모의법정’ 등 진로체험 운영

“어느 남자중학교 3학년 교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도․레․미라는 친구 세 명이 있었어요. (중략)…극도로 흥분한 레는 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필통에서 공업용 칼을 꺼내 미를 찌르려고 했죠. 그러나 레가 방어했고 주변 친구들이 붙잡아 말린 덕분에 심각한 상해를 입히지는 않았습니다. 레는 ‘살인미수’의 죄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지난 9월 28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서울북부청소년꿈키움센터에서 자유학기제 프로그램 ‘알고 싶은 법 세상’이 진행됐다. 이날 모의법정 교육을 맡은 김재성 강사의 ‘사실관계’ 설명에 월계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눈빛이 진지해진다. 김 강사가 들려준 이 이야기는 실제로 대법원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사건이다. 1심에서는 검사의 ‘살인미수’ 주장이 받아들여져 징역 7년이 구형됐지만, 피고 측의 항소로 진행된 2심에서는 피고에게 살인 의지가 없었다는 변호인의 주장이 인정돼 대폭 감형됐다. 변호인은 과연 어떤 점을 증거로 들어 피고인에게 살인의지가 없었다는 점을 증명하려 했을까. 학생들이 저마다 답변을 내놓는다. “목이나 심장 같은 치명적인 부위가 아닌 배를 찌르려고 했어요”, “왼손으로 칼을 잡았어요”….

조금은 섬뜩하지만 추리 소설이나 스릴러 영화에서 볼 법한 실감 나는 사건 이야기에 장난기 가득하던 학생들도 모두 집중하는 모습이다. 피고와 원고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이 사건. 김 강사는 실제 재판에서 검사와 변호사가 유리한 판결을 얻어내기 위해 어떻게 노력하는지, 재판은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를 비롯해 국민참여재판, 배심원 제도, 무죄 추정의 원칙, 법봉에 대한 일반적인 궁금증 등에 대해 학생들에게 설명했다. “자, 이제 월계중학교만의 법정을 만들어 볼까요?”





앞서 설명한 사건을 토대로 학생들이 직접 재판을 진행해보는 시간이다. 학생들이 판사와 검사, 변호사, 증인, 피고인, 배심원, 법정 경위의 역할을 각각 맡았다. 각자 역할에 맡게 법복을 입기도 하고 “진실만을 말할 것을 맹세”하는 선서도 했다. 미리 준비된 시나리오에 따라 검사와 변호사가 증인을 신문하고 검사의 압박 질문에 변호사는 이의를 제기하는 등 재판이 재연됐다. 마지막으로 모의법정에 참여한 모든 학생들은 각자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 것인지 의견을 말하고 판사는 우세한 의견에 따라 판결문을 읽었다. ‘땅땅땅!’ 판사 역을 맡은 학생이 법봉을 세 번 내리치면서 모의법정은 막을 내렸다. 


김 강사는 “오늘 이 프로그램이 법학적 해석 능력을 키우고 마음속에 법이라는 씨앗을 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면서 “학교에 돌아가서는 여러분만의 법인 학칙에 관심을 기울이고 어려움에 처한 친구들의 손을 잡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여러분이 어떤 직업을 갖든 법을 잘 알아야 합니다. 경영자가 된다면 회사법, 의사가 된다면 의료법을 알아야 하죠.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이기 때문이에요. 법 지식은 여러분이 꿈을 이루는 데 있어 원동력이 되어줄 겁니다.” 





이날 다른 층에서 진행된 교통안전·장애 체험에는 상봉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었다. 정은영 강사는 “우리는 누구나 사회적 약자가 될 수 있고, 사회적 약자는 모두가 함께 보살피고 보호해야 한다”면서 “일방적으로 도와준다는 생각을 버리고, 이미 내가 받은 도움과 앞으로 내가 받을 도움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자”고 말했다.

정 강사의 지도 아래 학생들은 안대로 눈을 가리고 지팡이로 길을 찾아 걸으며 시각장애인의 입장을 체험해봤다. 길이 이어지는지 또는 길이 끊기거나 방향이 바뀌는지 표시하는 노란색 보도블록을 따라 사각형의 길을 걷는 것이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눈을 가린 학생들은 엉뚱한 곳으로 걸어가기 일쑤였다. 자신만만해 하던 학생들도 체험을 마치고는 “생각보다 힘들다”며 놀라워했다.

다음 순서는 지체장애 체험. 휠체어를 타고 강의실 출입문의 턱을 넘어가는 것이 ‘미션’이다. 정 강사가 “여기 들어올 땐 저기에 문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죠?”하고 묻자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미션에 도전한 신범수(상봉중 1) 군은 안간힘을 썼지만 턱을 넘지 못했다. 신군은 “이거 진짜 어렵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명의 도전자가 더 나왔지만 한 명만 가까스로 미션에 성공했다.

이어 혈중알코올농도에 따라 시야를 재현한 특수 고글을 쓰고 계단과 자갈길 등을 걸어보는 체험도 진행됐다. 정 강사는 “사람마다, 또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알콜 분해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술을 몇 잔까지 마셔도 된다는 건 없다”며 “단 한 잔이라도 술을 마셨다면 절대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또 다른 강의실에서는 진로 역할극이 한창이었다. 장위중학교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미래의 나’의 모습과 그런 모습을 이뤄내는 데 필요한 것, 나를 막아설 장애물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장애물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내가 꿈꾸는 나로 다가가는 과정을 역할극으로 꾸며보기도 했다.

김종욱 강사는 학생들에게 ‘직업’보다 ‘정체성’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5만 원짜리 지폐를 구기고 발로 밟아 더럽혔다고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에게 이 돈을 준다면 안 가질 건가요? 이 돈이 여전히 5만 원짜리이듯, 가치는 변하지 않는 거예요. 직업은 ‘옷’과 같습니다. 옷은 바뀔 수도 있어요. 내 안에 뭘 담고 있는가 하는 정체성이 더 중요합니다.” 김 강사는 “무엇이 되고 싶은지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부터 생각해 봐라. 그에 대한 답을 찾으면 ‘옷’은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재원(장위중 1) 군은 이날 프로그램에 대해 “새롭고 좋은 경험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군은 “체험을 통해 판사라는 직업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었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정말 불편하겠구나 하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장희연 장위중학교 교사는 “프로그램이 짜임새 있게 구성돼 알찬 것 같다”면서 “소규모 인원으로 체험이 진행돼 학생들도 프로그램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설명했다.

‘알고 싶은 법 세상’은 서울북부청소년꿈키움센터의 대표적인 진로체험 프로그램이다. 지난 2014년 7월부터 시작해 연평균 60회차를 운영해왔다. 지금까지 이 프로그램을 거쳐 간 체험 인원은 약 2000명에 이른다. 센터는 서울 동부․성북 교육지원청, 성북구․강북구․도봉구․중랑구 진로직업체험지원센터 등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센터는 이외에도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으로 법무부공무원 체험, 사법체험 등을 운영하고 있다.

법무부 소속의 교육기관인 청소년꿈키움센터는 ‘청소년비행예방센터’의 또 다른 명칭으로, 전국적으로 16곳이 운영 중이다. 모든 센터에서 자유학기제를 위한 진로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솔로몬로파크’ 두 곳이 포함된다. 솔로몬로파크는 법무부가 대전과 부산에서 운영하는 법 교육 테마공원이다. 입법체험실․과학수사실․모의법정실․교도소체험실 등으로 구성된 법체험관과 법연수관, 법광장, 법도서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홈페이지(www.lawedupark.go.kr)에서 인터넷 관람 예약이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