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1] '타잔 과학자'의 소망 "아이들아, 아름답게 방황하렴"

[명사 인터뷰]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



“저는 타잔 과학자입니다. 과학자인데 실험실에서 가운을 입고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열대 정글을 돌아다니며 동물을 연구하고 관찰하는 사람이지요.”


자연이 아름다운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서 만난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은 자유학기제 웹진 ‘꿈트리’ 독자들에게 자신을 ‘타잔 과학자’라고 소개한다. 최 원장은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한국생태학회장 등 저명한 생태학자이자 현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개미 박사’로서도 이름났다. 국립생태원은 한반도 생태계를 비롯해 열대, 사막, 지중해, 온대, 극지 등 세계 5대 기후와 그곳에서 서식하는 동식물을 한눈에 관찰하고 체험해 볼 수 있는 생태연구·전시·교육 공간이다.


타고난 ‘생태학자’로 보이는 최 원장도 진로선택에서 ‘방황’은 존재했다.

“사실 아버지의 ‘명령’으로 의사가 되려고 했어요. 계속 낙방하고 뒷걸음질 쳐서 서울대 동물학과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오히려 저한테 잘 맞는 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최 원장의 고향은 강원도 강릉의 시골 지역이었다. 방학이 되면 개울가에서 놀았고, 개구쟁이처럼 바깥에서 뛰어노는 것이 좋았다. 뒤늦게 따지고 보니 생물학에 대한 적성이 있었던 것. 자신의 생태학적 적성을 확신하게 된 사건은 운명처럼 찾아왔다.

떠밀려 들어왔다고 생각한 대학에서 그는 학기 내내 학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서너 개의 동아리를 신설하고 관련 직책도 여럿 맡았다. 앞날이 컴컴한 나날이었다.

“따지고 보면 잘못 들어간 분야이지만 이왕 들어간 학문 분야가 무엇인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격적으로 실험실에 들어가 해부와 배양 등 실험활동에 매진했습니다. 그러다 제 인생을 바꿨다고 할 수 있는 ‘은사’를 만난 것이죠.”

“박사님, 당신처럼 놀고먹으며 살려면 어떻게 하나요?”


최 원장은 1976년 봄, 백발이 성성한 백인 노인이 대학 실험실에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 방황을 접고 생태학자로서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선다. 최 원장의 인생을 바꾼 백인 노인은 하루살이 연구로 유명한 미국인 조지 에드먼즈 박사였다. 하루살이 채집을 위해 세계를 일주하던 그는 한국에 하루살이 연구를 위해 방문했다. 그는 자신을 도와줄 한국인 조수를 찾고 있었고, 에드먼즈 박사의 지인 김계중 박사의 눈에 띄었던 최 원장이 추천됐다.

“과학자로서 이런 말을 하면 안 되지만, 에드먼즈 박사는 필시 하느님이 보내준 천사 같았습니다. 조수로서 에드먼즈 박사를 따라다니면서 본, 개울가에서 물을 첨벙이며 하루살이를 채집하는 박사의 모습이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훗날 미국 유학을 결정한 최 원장이 미국에서 에드먼즈 박사와 재회했을 때 에드먼즈 박사는 조수 시절 최 원장이 자신에게 한 질문을 기억하고 있었다. 박사의 입장에서는 엉뚱하고 다소 황당한 질문이었으리라. “에드먼즈 박사님, 당신처럼 놀고먹으며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나요?”

사실 최 원장은 당시 직업이라는 것 자체에 거부감이 있었다. 개울가에서 마음 편히 놀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주변에서는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종용했다. 출근도 싫고, 수업에 들어가는 것도 싫었다. 그때 자신의 눈앞에 개울가에서 ‘놀고 있는’ 노인이 나타난 것이다. 최 원장의 엉뚱한 질문에 에드먼즈 박사는 웃으며 미국 유학을 권했다. 7년 후 1983년 여름,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 시 하버드대 연구실에 자리 잡게 된다. 


생물학자가 쓴 철학서, ‘우연과 필연’


대학에서 방황을 거듭했던 비슷한 시기에, 최 원장은 우연히 프랑스의 분자생물학자 자크 모노의 저서 ‘우연과 필연’의 원서를 발견했다. 제목이 신기해서 서점에서 뽑아 든 작은 책이었다.

“우연과 필연으로 설명 못 할 것이 세상에 없잖아요. 무슨 ‘겁대가리’ 없는 제목인가 생각했습니다. 호기심에 없는 주머니 사정에도 그 책을 사서 한 페이지씩 읽었어요. 3분의 1분량 정도 읽었을 때까지도 저자가 생물학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굉장히 철학적인 책이었거든요.”

대학 시절, 자신에게는 너무나 거대한 존재였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철학과로 갔을 지도 모를 그였다. "어찌 보면 잘못 들어온 동물학과인데, 굉장히 철학적인 책을 생물학자가 썼더라고요. 수업시간에 수도 없이 들어본 유명한 학자가 자크 모노였거든요. 철학에 미련이 남아있던 저였지만 제대로 된 전공을 찾아왔다는 확신이 그때 들었습니다."




"생물학은 신나고 흥미로운 학문"


최 원장은 "지금은 생물학의 시대"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생물학에서는 1 더하기 1이 2보다 큰 학문입니다. 물리학, 화학처럼 계산이 딱 떨어지는 학문이 아니에요. 심장세포를 꺼내서 현미경으로 보면 다른 세포와 구별이 안 됩니다. 하지만 심장 세포를 모아놓으면 알아서 뛰기 시작해요. 심장 세포 하나하나를 볼 때 세포 수준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다음 단계에서는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겁니다. 이것을 '창발'이라고 합니다."

자연 속 창발 현상을 연구하는 것이 생물학이라고 소개했다. 상상력이 부족하면 하기 어려운 학문이라는 것이 최 원장의 설명이다. "단순하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많은 곳에 관심을 두고, 책도 많이 읽고, 체험도 많이 하는 사람이 신나게 해볼 수 있는 학문이 생물학입니다."



"애들아, 부모님 말씀 듣지마"


최 원장은 자신이 방황했던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아이들의 멘토 역할을 자청하고 있다. 학교를 방문해 '아름다운 방황'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 그 일환이다.

"저도 뒤늦게 진로를 찾은 사례입니다. 대학교 4학년 때 확신이 선 거죠. '아름다운 방황'이라는 강연 제목으로 아이들 앞에 많이 섭니다. 40대, 50대에 방황하면 골치 아프죠. 하지만 방황은 젊음의 특권이거든요. 진짜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과정이니까."

학부모에게는 미안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아이들을 만나면 최 원장은 "부모님 말씀 듣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이들에게 방탕하게 살라고 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학부모들을 만나면 '제발 아이들 방목 좀 하라', '자유롭게 풀어 놓으라'고 말해요. 아주 평범하게 안정적으로 간신히 잘 먹고 잘사는 자식을 남기고 돌아가고 싶다면 '개목걸이'를 해서 키워도 상관없겠지만, 진짜 '잘난 놈' 하나 키워 놓고 가시려면 방목을 하라고요. 그래야 기가 막힌 놈이 나옵니다."

부모는 복종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 그가 강연 제목을 '아름다운 방탕'이라고 짓지 않는 이유도 '설득'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붙잡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악착같이 설득하세요. 열 번 찍어 넘어지지 않는 나무가 없다고 하는데, 부모는 두 번이면 됩니다."

학부모가 아이들에게 진로의 결정권을 넘겨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최 원장은 "부모들이 아이들 장래 모습을 확신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부모 세대의 직업관은 아이들 시대보다 20년 이상 뒤처져 있어요. 중학생 아이들에게는 20년 뒤 장래 직업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져 있어요. 부모의 경우에는 40년 이상 내다봐야 한다는 의미죠. 지금 잘 나가는 분야가 20년 후에 잘 나갈까요? 단언컨대, 절대 잘 나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현재 잘 나가고 있는 직업의 맨 마지막 줄에 서 봤자 소용없어요.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는 자신의 차례도 오지 않고 줄이 끊어질 겁니다."

최 원장은 '자유학기제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했다. 아이들이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시간과 기회를 주자는 의미다. 그는 자신이 인생의 멘토, 에드먼즈 박사를 만난 것처럼 우리나라 아이들도 인생의 멘토를 만나길 바랐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불행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자유학기제가 중요한 것이죠. 우리나라 아이들, 악착같이 자유학기제 시기 동안 꿈을 찾으세요. 하고 싶은 것을 찾은 순간,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저절로 하게 됩니다. 제 경우는, 진로를 찾는 순간 탁 트인 고속도로가 펼쳐지더군요. 찾기까지가 어려웠지, 찾고 난 후에는 일이 술술 풀릴 겁니다."

학부모에게는 자유학기제 때 아이들이 얻을 기회를 뺏지 말라고 조언했다.

"어쩌면 자유학기제 시기 동안 학부모들은 이 때다 싶어 아이의 성적을 만회하려고 할 지도 모릅니다. 자식에게 죄를 짓는 행태예요. 자유학기제는 온갖 것을 다 찔러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부모의 어리석음 때문에 자식이 큰 인물이 되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마세요."


최재천 국립생태원 원장은…
최 원장은 자신을 '타잔 과학자'라 아이들에게 소개합니다. 열대 정글을 누비며 생물학의 신비로움을 연구하는 자유로운 생태학자입니다. 서울대 동물학을 전공한 최 원장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하버드대 생물학 박사를 취득했습니다. 1991년부터 2006년까지 서울대 생물학과 교수, 2006년부터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2013년부터 국립생태원 초대 원장으로 일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명사랑의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 '생각의 탐험' 등 다수가 있으며 1999년에는 아이들을 위한 책 '개미제국의 발견'을 펴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