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성실함이 과학자의 무기입니다"

[명사 인터뷰] 이현숙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교수



"과학자에게 진정한 '실패'란 없습니다. 실패는 또 다른 성공을 낳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죠."

이현숙(48)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가 직업인으로서의 과학자에 대해 설명하며 강조한 말이다. 이 교수는 "이 사실을 깨닫는 데 20년이 걸렸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 한 번에, 이 교수가 얼마나 많은 시도와 실패를 경험했는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현숙 교수는 생명과학 연구주제 중에서도 최근 각광 받고 있는 암(癌) 연구 학자다. 정상세포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암세포가 되는지를 실험하고, 궁극적으로는 생로병사를 결정하는 요소를 알아내는 데 주력한다.

이 교수는 자신의 일에 대해 "궁금한 점을 알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가설을 세우고, 이 가설이 맞는지 실험으로 증명하는 게 과학자"라며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자문자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를 규정하는 또 다른 단어는 '여성'이다. 그가 속한 생명과학 분야는 그나마 여성학자가 '없지 않은' 수준이지만, 자연과학 전 분야를 통틀어서 여성학자를 찾기는 정말 힘들다. 이 같은 현실엔 우리나라의 보수적인 분위기도 한몫했는데, 다행히 이 교수는 "성(姓) 역할에 대해 비교적 개방적인 부모님 덕분에 큰 반대 없이 하고픈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제가 과학자를 꿈꾸게 된 계기는 단순해요. 중학생 때 한 TV 다큐멘터리에 나온 세계 유수 대학의 모습들을 보며, 저도 실험복을 입고 멋있게 대학생활을 하고 싶다는 환상을 가지게 됐죠. 처음 아버지께 이과를 선택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는 당연히 반대하셨어요. 제가 판사가 될 거라 생각하셨거든요. 하지만 제가 몇 번의 설득에도 고집을 꺾지 않았고, 이후엔 크게 말리지 않으셨어요."

주변에 좋은 롤모델이 있었던 것도 계기로 작용했다. 이 교수의 아버지는 딸이 '먹고 살 걱정을 해야 하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말에 내심 불안했고, 산부인과 의사로 일하고 있는 이 교수의 작은할머니를 찾아가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버지는 작은할머니가 제 꿈을 체념시켜주길 바라셨던 거 같아요.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였어요. 할머니는 당신이 분자생물학 공부를 하고 싶었다며 과학자의 길을 적극 권하셨죠. 저는 더욱 결심을 굳혔고요."

정작 이 교수가 진로에 대해 방황한 건 대학원 졸업 후 한 연구기관에 취직했을 때다. 그는 오랜 연구에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자 자연과학 분야를 떠나 금융기업에 취직할 생각으로 사표를 제출했다.

"오랫동안 공들인 실험에서 제 예상을 벗어난 결과가 나왔고, 이 때문에 실패가 두려워졌어요. 너무 힘들어서 사표를 제출했는데, 저를 평소 아끼셨던 상사가 사표를 반려하시며 저를 격려해주셨어요. '실패가 다 실패가 아니다. 충분히 즐기면서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데에 힘을 얻어서 다시 실험을 재개했고, 이 실험 결과가 박사과정을 밟는 계기가 됐죠."

젊은 시절 진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그는, 중 3이 된 딸의 꿈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과학자가 되고 싶어하는 딸에게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조언해왔다.
"딸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학교 방학 과제로 실험보고서를 써야 한다며 '고춧가루의 살균작용'을 증명하기 위한 실험을 설계해왔어요. 같은 과일에 3종류의 고춧가루를 뿌리고 곰팡이가 생기는 속도를 측정하는 실험이었는데요. A사의 고춧가루를 뿌린 과일에서는 오히려 곰팡이가 더 빨리 자란 거예요. 딸은 실험설계가 아니라 고춧가루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지만, 이 보고서는 가설을 증명하는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도 상을 못받았죠. 그런데 한 달 후 식약처 조사를 통해 A사의 고춧가루에 불순물이 첨가됐다는 사실이 뉴스로 알려졌어요. 딸은 우리의 짐작이 맞았다며 손뼉치고 기뻐했어요. 저 역시 딸이 '실패가 끝이 아니다'라는 경험을 하게돼서 무척 기뻤죠."

그는 최근 들어 딸뿐만 아니라 딸 또래의 모든 청소년의 진로교육에도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서울대 자연과학대 기획부학장으로 일하면서 청소년 진로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체감했기 때문이다. 경쟁 체제에 힘들어 하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진 제자, 진로 때문에 방황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진로에 대해 통감하게 됐다.

"우리 학교 신입생 학부모를 대상으로 설명회를 하다가 깜짝 놀랐어요. 서울대까지 온 자녀의 '먹고 살 걱정'을 하는 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다들 서울대를 보내는 것에만 집중했지,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잘 몰랐던 거예요. 사실 우리가 내다볼 수 있는 미래는 길어야 7년이에요. 진로고민은 그 이후를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맡겨두셔야 합니다. 결국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경쟁력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학교에서 진로 탐색의 기회가 주어지는 자유학기제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현숙 교수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 생명과학부 교수. 이화여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후 영국 캠브리지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세포생물학과, 워싱턴주립대학의 선임연구원, 하버드 의과대학 다나파버 암연구소(Dana-Farber Cancer Institute) 방문교수를 역임했다. 수상경력으로는 서울대학교 연구대상(2012), 마크로젠 여성과학자상(201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