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 자유학기제로 진로를 기획하라


1995년에 EBS PD가 되었으니 PD가 된 지 올해로 꼭 20년째이다.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며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PD란 직업에 정말 감사함을 느낀다.
하지만 필자의 원래 꿈이 PD이었던 것은 아니다. 방송사 시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전까지 필자의 꿈은 줄곧 법조인이었다. 중학교 시절 TV에서 방영된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란 미국 법대생을 소재로 한 외화를 보며 멋지다는 생각에 법조인을 꿈꾸기 시작했고 결국 대학도 법학과를 가게 되었다.

하지만 꿈은 꿈일 뿐이었다. 중, 고교 시절 사회과목에 나오는 법(실제 헌법 일부가 소개되었을 뿐이다)이 법학의 전부인 줄만 알았던 정보의 무지와 적성도 모른 채 법조인이 되면 누릴 수 있는 반대급부만을 생각하며 법학을 공부했지만 결국 법조인이 되기에는 적성이 제대로 맞질 않았다. 결국 20대 중반에서야 법조인이 되려는 꿈을 접고 방송국 PD가 되는 꿈을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 적성에 맞는 PD의 꿈은 이루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점이 많이 있다. 좀 더 미리 진로를 정할 수 있었다면 PD란 직업에 도움 될 만한 것들을 훨씬 많이 경험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채 시간을 보냈더니 실제 PD로서 생활하는데 많이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사실 이런 후회가 필자만의 것일까? 과거 우리의 교육은 적성이나 끼를 고민하거나 찾기 위한 기회 제공에 인색했었다. 성적과 대학 입시가 우선이다 보니 적성과 끼를 고민해 볼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점수에 맞춰 대학 학과를 정하기 일쑤였다. 이러다 보니 정작 대학교에 가서는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한 온라인 취업 포털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전공 선택을 후회한 적이 있는가?”라고 묻는 설문조사에서, 72.7%가 ‘후회한 적 있다’고 응답한 결과를 보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실제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많은 청소년들을 만나는 데 안타깝게도 많은 아이들이 장래 꿈이 없다고 말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들도 많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은 필시 무기력할 수밖에는 없다. 도대체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다 프로그램 제작에서 그 답을 찾은 적이 있다.

프로그램을 기획하다 보면 무엇보다 사전에 관련된 자료조사를 정확하고 세밀하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와 메시지를 정하게 되며 그 내용과 골격을 짜게 된다. 만일 이런 자료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프로그램은 방향성을 잃고 우왕좌왕 하다가 실패하고 만다. 결국 프로그램 기획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인생도 프로그램과 유사하다. 본인의 꿈과 진로를 정하는 데는 무엇보다 '사전 자료조사'를 통한 제대로 된 기획이 필수다. 내가 꿈꾸는 진로가 정말 적성에 맞는 것인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미리 충분히 알고 준비해야 한다. 만일 이런 준비가 없다면 인생은 나침반 없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처럼 끊임없이 헤맬 수밖에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사전 자료조사’에 해당하는 꿈과 진로 적성 찾기의 기회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는 '자유학기제'는 진심으로 환영할 만한 시도이다. 중학교 한 학기동안 시험의 부담에서 벗어나 참여형 수업과 진로탐색 등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꿈과 끼를 찾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의 이 제도는 특히 이제 막 자신들의 미래를 고민하기 시작한 중학생들이 대상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부디 이 시기 아이들에게 좋은 인생의 씨앗을 뿌리는 기회가 되길 바라며 알찬 내용으로 소기의 성과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

이런 바람과 아울러 몇 가지 점들은 꼭 주의를 기울였으면 한다.

첫째, 콘텐츠의 방향성과 질이다. 이 시기는 직업에 대한 'how'를 배우는 시기가 아니다. 자칫 직업별 체험을 단순 나열식으로 경험하는 것은 오히려 이 시기 아이들을 헷갈리게 만들 수 있다. 마치 본질적 메시지는 정하지도 않은 채 수많은 정보들을 모으다 보면 오히려 프로그램이 갈팡질팡해 결국 제작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프로그램의 목표를 정하듯이 직업이 왜 중요하고 어떤 요소를 고려해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정보 제공이 실습과 함께 반드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 주는 것이 아니라 낚시 법을 알려준다는 심정의 접근이 꼭 필요한 것이다.

둘째, 무엇보다 학부모와 함께 해야 한다. 이 시대 부모들을 취재하다 보면 몇 가지 특징들이 관찰되는데, 특히 아이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를 갖고 있다. 이런 과도한 기대치는 아이를 기다리기보다 간섭하게 만든다. 그러다보니 진로에 대한 고민은 물론 사소한 일상까지 간섭하고 잔소리한다. 아무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꿈과 적성을 찾는다 하더라도 이런 부모들의 기대치와 간섭이 변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이다. 이런 부모들의 인식전환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부모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직업이란 것이 얼마나 협소한지, 그리고 무엇이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진로인지에 대한 인식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 이런 부모 대상의 노력들은 자유학기제의 콘텐츠 질과 교사들의 노력을 줄여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실제 수많은 학부모들은 훌륭한 진로직업의 멘토가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하고 깊이 있는 콘텐츠들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학기제 학부모지원단’의 활성화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그리고 부모들의 조력을 이끌어내는 시스템 마련에도 노력했으면 한다. 자유학기제 학부모지원단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제점이 ‘참여를 원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인 학부모’ 일 것이다.
이는 교육당국과 학교가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기업체 등에 학부모 참여를 정식으로 요청하거나 학부모 직장을 직접 탐방해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도적으로 마련한다면 훨씬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학기제의 성과를 너무 미시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한다.
자유학기제는 아이들에게 단순히 흥미가 가는 직업을 소개하는 시간이 아니다. 자신이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자신들의 미래와 진로를 기획하고 고민해 보는 시간이다. 비록 이 기간 동안 구체적인 진로를 찾지 못해도 괜찮다. 자신의 미래와 꿈을 기획해 보는 프로세스를 처음으로 경험해 본다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인생의 자산이 될 것이다. 당장 물고기를 잡지 못하더라도 낚시 법을 배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것처럼 말이다. 부디 이런 마음가짐으로 자유학기제를 바라봤으면 한다.

 

 

■ 김광호 PD는…

교육방송 EBS에서 1995년부터 교육다큐부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EBS 다큐프라임 등 교육에 관한 다수의 훌륭한 콘텐츠를 제작해 제32회 한국방송대상 대상(2005),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2008), 제13회 남녀평등상 최우수작품상(2011),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사회문화 부문 우수상(2014) 등을 수상한 스타 PD입니다. 저서로는 ‘엄마생각 아이마음(2013)’, ‘오래된 미래 전통육아의 비밀(2012)’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