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 경험은 최고의 스승

[칼럼] 체육예술분야 진로체험의 방향


직업교육을 넘어 전인교육, 전문교육을 넘어 소양교육

자유학기제 진로체험은 환영할만한 제도이다. 다만, 틀림없이 나타날 두 가지 경향은 최대한 피해야만 한다. 한편으로, 십대의 얄팍한 호기심만 충족시키는 이런저런 경험해보기에 그쳐서는 안된다. 다른 한편으로, 지나치게 때 이른 직업적성 확인 작업이 되어서도 안된다. 이것은 학교에서 제공되는 교육적 활동이다. 자신의 직업정체성을 확정짓는 시간이 아니다. 자신이 지닌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세심히 알아보기 시작하는 탐색 과정일 뿐이다.


자유학기제 진로체험은 학생의 잠재력을 찾아내고 타진해보는 ‘교육적’ 과정이다. 진로체험이되, 오로지 직업적 꿈과 끼를 찾는 것에 한정되는 것을 피해야 하는 이유다. 지덕체가 온전히 균형 잡힌 성인(全人)으로의 성장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전인적 인간만이 올바른 직업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학교 저학년이라는 너무 이른 시기에 자기의 앞길을 결정하고 그것에 국한시켜 매진하는 우도 피해야만 한다. 대기만성이다.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된다.


장차 자신의 삶을 의탁할 직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정도이상 이르게 결정하거나 확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해서는 곤란하다. 90세의 평균수명이 일반화될 현 청소년세대는 전 생애에 걸쳐 2개 내지 3개의 직업을 가져야 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는 십대 초반에 찾아낸 자신의 소질과 재능이 한평생을 버텨내도록 해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따라서 자유학기제 진로체험은 전인적 교육의 일환으로 제공되어야 하고, 직업적 소양의 발견을 위한 첫걸음으로서만 실행되어야 한다. 구체적이고 특수한 재능을 찾아내어 그것의 훈련에만 몰두하게 만드는 전문직업교육의 특징을 띠어서는 안된다. 지나친 조기교육은 조기탈진 현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 직업적 사회화 연구의 일관된 결론이다. 체육과 예술분야의 진로체험에 있어서도 직업교육보다는 전인교육, 전문교육보다는 소양교육의 특징을 소실치 않도록 해야 한다.


첫째, 체육과 예술체험은 전인교육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한다

성장기의 한국 청소년들에게는 체험이 절실하다. 학교와 학원에 앉아서 듣고 보는 것 위주로 하루를 보내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몸과 마음을 움직이는 활동과 체험이 절대적이다. 주지교과중심의 지성 증진에 집중된 우리 교과교육은 아이들의 체성(體性), 감성, 덕성, 그리고 영성까지도 함께 높여주는 조처가 요구된다. 유치원부터 선행학습과 입시경쟁에 내몰려 핍진해진 우리 아이들이 온전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전인적 차원의 도움을 주어야한다.

 

스포츠, 무용, 연극, 미술, 음악 등의 체육예술 체험이 가장 시급한 조처다. 체육과 예술이 함께 해야만 아이들은 몸과 마음과 영혼이 균형 잡힌 사람(whole person)으로 성장할 수 있다. 머리만이 아니라 ‘손과 발’, 그리고 ‘가슴’까지도 온전히 갖춘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운동장에 모여 축구공을 차며 이리저리 뛰고, 소리를 힘껏 내지르며 맡은 배역을 연기하며, 혼신으로 몰입하며 악기를 연주하고, 무대에서 점프하며 손끝과 발끝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그런데 통념에 따르듯, 체육은 체성을, 예술은 감성을 각각 다루는 활동이 아니다. 체육과 예술을 각각 분리시켜 독립적으로 가르치는 기존의 교육방식은 올바르지 않다. 이 둘은 함께 가르쳐졌을 때에 가장 훌륭한 교육적 효과, 즉 전인교육의 이상을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플라톤은 오래전에 이 사실을 깨우쳤다. '국가론'에서 시민의 초기교육에 대한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의 대화를 들어보라.

- 소크라테스 : 글라우콘, 음악과 체육, 이 두 가지 활동의 참된 목적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듯이, 전자는 정신의 훈련을 추구하고, 후자는 육신의 단련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네.
- 글라우콘 :  그럼 도대체, 그 둘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 소크라테스 : 그 두 가지 활동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둘 모두를 통해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바로 ‘영혼의 성장’이라네. 아마 어떤 신이 인간에게 이 두 가지 기예, 즉 음악과 체육을 주신 것 같은 생각이드네. 몸과 마음에 적절한 긴장과 여유를 유지하면서 이 둘을 조화롭게 하나로 만들 수 있도록 말이지.


이 당시 말하는 ‘음악’(mousike)은 요즘의 ‘예술’을 통칭한다고 본다. 플라톤은 꿈꾸던 이상국가에 필요한 시민을 만드는 초기교육의 핵심을 체육과 예술로 보았다. 그리고 이 둘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가능한 한 함께 가르쳐져야 바라는 효과(영혼의 성장, 즉 전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간파하였다. (어깨가 눈에 띄게 넓어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플라톤이 한때 도시국가 대항전에 레슬링 대표선수로 출전하였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그의 이러한 주장은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둘째, 체육과 예술체험은 문화적 소양을 길러주는 것이어야 한다

체육과 예술체험은 또한 현대인이 갖추어야 하는 문화적 소양을 위한 활동이어야 한다. 스포츠나 음악이나 미술은 선수나, 연주자나, 화가처럼 직업과의 연관 속에서만 체험되어서는 곤란하다. 이것들은 우리가 문화를 향유해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데에 반드시 필요하다. 공연과 전시를 통해 예술작품을 감상하고, 스포츠를 관전하고 응원하는 일은 당사자의 삶을 행복하게 만든다.

 

이러한 문화적 소양은 장차 자신의 직업적 재능과 연계될 수 있다. 요즘에는 미술관의 큐레이터, 예술공연장의 기획전문인, 스포츠기업의 제품개발 직원 등 체육예술관련 다양한 직업이 생겨났고,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이러한 직업들은 반드시 체육전문가나 예술전공자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선수나 연주자, 감독이나 작가는 운동이나 그림, 조각이나 성악에 모든 것을 쏟아야하지만, 이 같은 ‘이차적 전문직’은 경영이나 행정, 디자인이나 영양학을 전공해서도 가능하다.
 

물론 예술과 체육에 대한 문외한은 이 일에 가능하지 않으며, 제대로 된 소양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 체육과 예술에 대한 기본소양은 교육받은 사람은 누구나 지니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인간이 교양 있고 문화적인 삶을 사는 데에 필수적이다. 우리 학생들이 진로체험에서 얻을 것은 바로 이러한 문화적 소양으로서의 체육과 예술에 대한 근본적 관심과 열정이다.

 

체육예술 진로체험을 선수나 작가나 연주자 교육에 제한한다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이를 자신과는 상관없는 분야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현실에서는 오로지 극소수의 재능 있는 소수에게만 성공이 허락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포츠를 다루는 회사원이나 연구원, 예술을 다루는 행정가나 사무원은 누구나 될 수 있다. 이를 위한 체육예술 진로체험은 직업적 역량보다는 문화적 소양을 쌓도록 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프로그램이 개발되고 운영되어야 한다.
 

중학교 자유학기제에 운영되는 진로체험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자신의 재능과 관심을 어렸을 적부터 특정한 곳에 집중시키도록 만드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된다. 경주마에게 눈가리개를 하는 것은 한눈팔지 말고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라는 강압적 조치다. 우리 중학생들에게 그런 눈가리개는 필요치 않다. 자유학기제는 그동안 아이들을 경주마 취급한 것을 반성하며 야생마처럼 이곳저곳을 뛰어다닐 수 있게 만든 제도이지 않은가?   
 
셋째, 전인적 성장을 위한 문화적 소양 쌓기가 행복한 진로를 약속한다

체육과 예술에는 다른 교과들과는 판연히 구분되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이 둘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평생토록 배우며 향유한다는 점이다. 한번 생각해보라. 나이 들어 여흥이나 재미로 수학문제를 풀고 과학적 실험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하지만 달리기, 테니스, 수영, 배드민턴, 등산 등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더 많이 찾게 된다. 음악회나 전시회를 찾는 발걸음도 잦아진다. 영화나 연극이나 뮤지컬이나 무용공연도 마찬가지다. 

 

플라톤이 말했듯, 전인으로서의 완성을 위하여 체육과 예술을 즐길 수 있는 소양을 길러주어야 한다. 이러한 기초소양이 키워지면, 그것이 바로 자신의 직업으로까지 발전할 토양이 된다. 은행원을 하다가 퇴직하고 음악카페를 차리는 사람, 방송국 PD를 하다가 스포츠미디어 교수가 되는 이들을 보라. 그러니 어렸을 적부터 하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또는 그리는 것 등 각자의 자질과 취향에 맞는 방식으로 체육과 예술을 즐길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 우선이다.
 

체육과 예술분야에서의 진로체험은 전인성장과 문화향유를 위한 체험교육이 되게 하자. 지나치게 전문적인 직업교육의 체험장으로 만들지 말자. 대신에, 행복한 삶을 스스로 가꾸어나갈 수 있도록 평생토록 체육과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질 높은 소양을 길러주자. 모든 청소년들이 자기 삶을 아름답게 꾸며갈 수 있는 자질을 학교에서 키워주도록 하자. 그 길에 자유학기제 진로체험은 최고의 경험을 제공해줄 수 있다. 옛말처럼, 경험이야말로 최고의 스승임을 확인하자.



◆최의창 교수는…

서울대에서 학·석사를 마치고 1992년 미국 조지아대학교에서 스포츠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3년부터 1997년까지 한국체육과학연구원(현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 체육지도자 양성 업무를 지원했습니다. 1998년부터 10년간 건국대 체육교육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2008년 모교인 서울대 체육과로 옮겨 교수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학교체육, 전문체육, 생활체육 등 스포츠교육 전반에 대해 열정적인 활동을 펼쳐왔으며, 특히 인문적 스포츠와 하나로코칭의 이론개발과 현장 적용을 깊이 연구해 왔습니다. 저서로는 ▲체육교사로 일하기 ▲인문적 체육교육과 하나로수업 ▲가지않은 길 1~3 ▲코칭이란 무엇인가 등 다수가 있습니다.